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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독서

[북 리뷰]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by 빛의 일꾼 2022. 12. 25.

우리 삶은 그래도 살아볼 만 하다.

박경리의 장편소설인 [김약국의 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우리의 인생과 비교하자면 그나마 살아갈만 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름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주며 비극의 정화 효과를 보여주는 소설인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은 인간의 삶이란 생로병사의 필연적 과정이 있기에 삶의 본질을 비극으로 파악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김약국의딸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인 박경리 작가의 [토지]라는 대작을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스무 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이 소설을 1년 계획으로 도전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무렵 접하게 된 [김약국의 딸들]. 비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선뜻 읽기를 꺼려한 소설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기 머뭇거렸던 이유 중에 하나는 최근에 재미를 붙힌 자기계발서들에서 강조하는 긍정의 마인드와 잠재의식의 정화와 상반되는 부정의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책에 손이 가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경상도 방언이 주를 이루는 등장인물들의 대화 뉘앙스가 온전히 나에게 전해져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책의 제목을 볼 때마다 3대에 걸친 김약국(김성수)의 일가와 그 딸들의 파란만장하고 애달픈 사연의 궁금함이 점점 더 커졌기에 먼저 오디오북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1993년도에 초판된 나남출판사 지류 책의 책장을 넘기며 박경리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에 감탄하며 읽고 있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도 박경리 작가와의 첫 대면에 역사(歷史) 이야기에 있어서 무서울 정도의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했다 한다.

 

1926년 통영(옛 충무)에서 태어난 작가의 개인적인 삶 또한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은 듯 싶다. 홀어머니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작가는 자신의 출생을 "불합리한 삶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나칠 정도의 독서광이던 박경리는 진주여고 졸업 후인 1946년에 전매청 서기와 결혼하였고 한때는 인천에서 책방을 운영했었다. 그 후 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를 졸업하고 황해도의 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었다. 한국전쟁 발발로 서울로 돌아온 와중에 남편과 사별을 하게 되고, 아들 또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잃게 된다. 어린 시절엔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픔에 그는 시(時)를 통해 위안을 받았고 시인이 되고 싶어 틈틈이 시를 썼다고 한다. 유고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 수록된 시인 '옛날의 그 집'

 

옛날의 그 집

 

한 집안 여성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소설

" 내가 행복했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작가는 한국전쟁 중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홀로 키우며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이 소설 또한 한 집안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비극적인 삶과 운명을 모티브로 한다. 김약국의 어머니인 숙정은 자신을 짝사랑했던 송욱과의 관계에 의심을 받아 비상을 먹고 자결을 한다. 그리고 송욱을 살해하고 도주한 김약국의 아버지인 김봉룡은 그 후에도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큰아버지 밑에서 구박을 받으며 자라는 김성수(김약국)는 김약국의 대를 이으며 나름 행복한 삶이 보장된 듯 보이지만 투자한 어선의 조난과 어장의 흉어 등으로 가세가 점점 기울어져 간다. 그리고 다섯 명 딸의 운명이 불행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다섯 딸의 결혼의 실패가 할머니(숙정)의 자결이 원인인 듯한 관습적이고 주술적인 문장인 "비상 먹은 자손은 번성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이 소설 속에 계속해서 표현되고 있다. 첫째 용숙은 17세에 시집을 가지만 24세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다. 과대한 피해망상에 기인하는 그녀의 물욕과 성적 불만등이 의사와의 불륜과 탐욕으로 그려지고 있다. 지식 여성을 대표하는 둘째 용빈은 도시로 유학을 하게 되고, 학교 졸업 후로 미룬 정홍섭과의 결혼이 파탄 나게 된다. 그녀의 불행은 기울어져 가는 가정에 의한 불행으로 보여지지만 소설 속에서는 그녀를 통해 희망을 그리고 있다. 집안의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둘째 용빈을 통해 열어놓고 있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녀는 비극의 현장인 통영에서 거리를 두었기에 그나마 커다란 불행에서 그리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셋째 용란은 아버지가 어장을 돌보는 믿음직하고 강직한 서기두와의 정혼을 정해 놓았지만, 머슴인 한돌과의 육체적 쾌락을 즐기다 발각이 되어 온 동네에 망신을 당하고 결국은 급하게 최상호의 아들인 연학에게 시집을 보낸다. 그러나 연학은 성불구자이며 아편쟁이였다. 그 후 통영으로 돌아온 한돌과 간통을 하게 되어 아편쟁이 남편인 연학에 의해 어머니인 한실댁과 머슴인 한돌이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용란은 정신 이상자가 되는 가장 비극적인 운명으로 살게 된다. 넷째 용옥은 셋째 용란을 대신해 서기두와 결혼을 하지만 남편인 서기두에게 용란을 사람을 받지 못한다. 남편이 부산으로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시아버지인 서영감에게 추행을 당하게 되고 아이를 들쳐 없고 부산으로 남편을 찾아가지만 남편과 길이 엇갈려 다시 통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침몰하여 죽게 된다. 둘째 용란이 교육받은 신여성을 상징한다면 넷째 용란은 교육을 받지 못해 집안 살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인물로 묘사가 되고 있다. 자신의 집과 기울어져 가는 친정을 돌보는 전통적인 여인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막내인 용혜는 언니 용빈과 통영의 집을 떠나며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여성의 운명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여인의 운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김약국 어머니인 숙정의 삶으로부터 시작되는 비극이 그의 아내 한실댁에게, 그리고 그의 다섯 딸에게 전가되며 불행이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운명, 특히 여성의 운명에 포커스가 맞춰진 소설이다. 신여성으로 대표되는 둘째 용빈을 통해 이러한 비극이 극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견디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한 줄기 빛을 찾게 되며,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생명력과 자긍심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게 되는 소설이다. 

 

 

 

walden7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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